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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3(목) 14:46
상철이 할머니-2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9월 20일(수) 11:26
박주정교장
광주광역시 진남중학교 교장
▶지난호에 이어서
어떤 날은 할머니를 모시고 직접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 할머니가 계신 앞에서는 학교를 질책하면서 할머니 편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상철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상철이가 어느 중학교로 배정받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중학교 때도 할머니의 습관은 여전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글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 어느 날 교육감 비서실에서 급히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본청에서 자리를 옮겨 동부교육청 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할머니가 가방 속에 총을 가지고 교육감실로 난입하여 교육감께 총을 겨누는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내말 밖에 안들으니 어떻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우선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총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짜장난감 총인데 처음에는 진짜 총처럼 보여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여하튼 내게 빨리 할머니를 밖으로 나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할머니와 통화를 부탁했다. 내 전화라고 하니까 할머니가 얼른 받으셨다. “어머니,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하시라 했는데 왜 또 가셨어요? 얼릉 교육감실에서 나오세요.”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할머니는 능청맞게 나를 진짜 아들처럼 대하면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다. 어느 정도 듣다가 “어머니가 교육감실 가서 그러시면 교육감이 아들 승진을 안시켜줘요. 아들 승진하는 꼴 볼라믄 얼릉 나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 아들에게 불이익이 있다면 나가야제.” 하면서 순순히 교육감실을 나오셨다. 그리고 만나서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도 내 아들이 반응이 없어 화가 나서 왔다는 것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자 기분 좋게 귀가했다.
나는 오랜 세월 할머니와 알고 지내면서 처음 미움의 마음에서 점차 연민의정으로 변해갔다. 할머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전화가 없으면 궁금할 정도로 마음속에 할머니가 자리했다. 그래서 나는 십여 년 동안 추석과 설 명절이 다가오면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재래시장을 돌면서 명절 찬거리를 사서 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나를 친 자식처럼 대했다.
할머니가 내 마음속에서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와 동일시 되어가고 있었다.
상철이는 한 사립 고등학교를 지원했다. 마침 그 학교에는 내 친한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상철이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내가 미쳤냐.” 하고 펄쩍 뛰었지만, 3년 동안 상철이 담임을 맡으면서 나보다 할머니와 더 친하게 지냈다. 할머니는 늘 말했다. 그 친구가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아들이 상을 주라고.
상철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나는 아무리 밤늦게 걸려온 전화라도 받는 습관이 있다. 어느 날 새벽 4시 무렵 전화가 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따라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얼마 뒤 우연히 상철이 담임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친구야! 상철이는 졸업했지? 할머니는 잘 계신단가?”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몰랐어?”
“뭣을?”
“자네한테 유언을 했다던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새벽 4시에 걸려온 전화는 상철이 할머니 전화였다. 돌아가시기 직전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음성녹음으로 ‘상철이를 잘 부탁한다’라고 남겨놓았다.
상철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부고를 어떻게 알았는지 장례식장 한가운데에 상철이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고인에 대한 예를 다하려고 했다. 나는 집히는 게 있어서 부의금을 찾아봤더니, 단돈 2만 원도 없는 할머니가 준 봉투에 2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봉투에 그 금액의 두 배를 넣어 조카에게 주면서 차로 모셔다드리라고 했다. 그런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할머니와 정을 나눴던 10여 년이 넘는 세월이 그립기만 하다.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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