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애들 옷가지를 사거나 생활비가 떨어지면 하나둘 전당포에 잡히거나 금방에 팔았다. 이제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도 아내에게 늘 욕을 먹는 일 중에 하나다. 지금도 아내는 도대체 그걸 어디다 썼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핀잔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걸 어디다 썼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제 이 글을 보면 알게 될 터이다. 한번은 빚이 늘어나 감당할 수가 없어서 환경부에서 공모한 ‘자연 체험학습장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천만 원을 받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닭, 오리, 돼지, 토끼를 키우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프로젝트였다.
농장에 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꾸미고, 발효 돈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환경정화처리 장치도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화공학 미생물 처리 공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학교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왔다. 아마 5년 동안에 수천 명이 오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었다. 경비 지출이 힘들었다. 애들과 생활하면서 쓸 때마다, 먹일 때마다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음식을 사와서 먹일 때 그 모습을 찍고, 영수증을 첨부하는데 아이들은 그걸 제일 싫어했다. 나도 싫었다. “애들아! 우리 이렇게 하지 말고,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 볼까?”
“선생님, 그렇게 해요. 저렇게 하지 말게요. 재미도 없고요, 맨날 억지 사진 찍으라고 하니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부족했지만 서로 간에 더 우애했고, 감사했고 자부심이 커졌다. 특히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물론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갖 욕설이 낭자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심한 욕을 퍼부었다. 어떤 때는 내가 더 많이 했다. 그러면 애들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욕 좀 그만하세요. 내가 화난 건데 왜 선생님이 욕을 하세요?”
나는 애들보다 더 심하게 욕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게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 눈에는 내가 선생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보다 지능이 좀 더 낮은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지금도 듣는다. 난 그랬다. 꼰대 노릇을 하기 싫었다. 상처받은 그 애들에게 가장 가까운 그리고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동학습장에서 책을 읽히고 싶었다. 여전히 돈은 없었다. 한 달 월급 반을 쪼개 헌책방에서 아이들과 책을 골랐다. 고등학생이지만 초등학교 수준의 독서력이었다. 가는 서점마다 구입한 것은 대부분 만화였다. ‘
선데이 서울’도 샀다. 좀 고상한 책을 읽어라고 했더니 ‘콩쥐팥쥐’, ‘흥부전’을 골랐다. 우리는 그 책을 가지고 밤에 돌려가며 읽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보다는 내 이야기를 더 재밌어했다. 캄캄한 밤에 불을 끄고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이불처럼 깔아 놓았다. 아이들은 훌러덩 팬티만 입고 방을 뒹굴면서 키득거리고, 웃고, 떠들면서 밤이 깊어갔다.
슬픈 이야기에 소리없이 우는 애도 있었다.
잔인하게 동물을 괴롭힌 애도 있었다. 토끼의 눈을 빼서 죽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래도 나무라지 않았다. 친구들도 그 아이를 싫어했는데 어느 날 밥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동혁이는 어디 갔어. 왜 밥 먹으러 안 오지?” “선생님, 살금살금 가 볼까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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