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사 고(故) 김난영 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6년 03월 11일(수) 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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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큰아들로서 그리고 네 남매를 대표하여 감사와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추도사를 올립니다. 평생 배움으로 사람을 세우시고, 기도로 가족을 살리신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어머니의 품은 태중에서부터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저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찬양과 기도로 태교를 받았습니다. 다섯 살 무렵엔 어머니 손을 잡고 월야종합고등학교로 가, 교탁 아래 쪼그리고 앉아 고등학생들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머니는 배움의 자리에 저를 먼저 앉히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지혜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생은 배움과 가르침으로 빛났습니다. 젊은 시절 신학문을 익히시고 평생 후학 양성에 힘쓰셨습니다. 강단에서와 일상에서 “배움은 사람을 살린다”는 신념으로 사람을 세우셨고, 그 가르침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저희 네 남매를 잉태하시고 낳으셔서, 산고를 찬양으로, 눈물을 양식으로 바꾸어 우리를 길러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정에는 이사와 고단함이 잦았습니다. 아버지 사업의 부침으로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싣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고, 여섯 식구가 한 칸 방에서 칼잠을 자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오랜 세월 ‘문칸 방’에서 지내시다가, 어느 날 이모님의 도움으로 지금의 2층 집에 어머니만의 방을 얻으셨을 때, 어머니는 그곳을 마음속 ‘궁궐’처럼 여기며 사셨습니다. 계단이 가팔라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로 옮기시자 여러 번 권했지만, 어머니는 “교회 가까이 살며 새벽예배 드리고 싶다”고 하시며 여생을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교회를 향한 사모함이 마지막까지 어머니의 방향이었습니다.
저는 열네 살에 사구체신염으로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셨고,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돌려 밤새 철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그때의 증인들이 계십니다. 치유 집회를 찾아다니며, 엘리사를 섬긴 수넴 여인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제게도 생명이 돌아오기를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그 믿음의 눈물은 저를 살렸고, 우리 가정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적이었고,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손에 굳은살이 배도록 수고하시며 “배움만은 끊지 말아라” 하시던 그 한마디가 우리를 책상 앞과 기도의 자리로 다시 세웠습니다. 네 남매의 학업과 사명은 모두 어머니의 희생에서 나온 열매입니다.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은 신앙과 근면, 성실과 인내를 본받아, 어머니의 신앙과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정진하겠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사랑은 생명의 계보로 이어졌습니다. 저희 네 남매가 장성하여 각자 가정을 이루어 어느새 여덟 식구가 되었고, 네 가정에 손자손녀 아홉을 허락받아 모두 열일곱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의 결실이며, 어머니께서 이 땅에서 맡기신 사명을 성실히 완수하셨음을 증언합니다.
그 사명의 열매는 사역의 자리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저와 안해 최금옥은 전인치유와 기독문화선교, 기독언론 사역의 현장에서 작은 등불이 되고자 했습니다. 둘째 이지연 사모는 남편 김광삼 목사와 함께 개척교회 사역을 감당해 왔고, 셋째 이태행 목사는 안해 손덕신 사모와 더불어 장애우 사역의 곁자리가 되었습니다. 넷째 이남행 목사는 안해 오혜림 사모와 함께 위구르 민족과 국내 이주민을 섬기는 선교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홉 명의 손자손녀들 또한 각자의 은사를 따라 자기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 기증을 약속하셨습니다.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공부할 의학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사랑을 남기고 떠나신 것입니다. 몸소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신 어머니께서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신 것입니다. 저희 자녀들은 가족회의를 통해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기로 하고, 장례식 둘째 날 어머니를 전남대학교로 떠나보냈습니다. 입관실에서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하였고, 머리카락은 정갈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열일곱 명의 가족이 작별 인사를 올리며 오열했습니다.
“어머니, 저희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 품에 안겨 안식하세요. 사랑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가르침(요 12:24)을 어머니는 삶으로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는 평생의 스승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네 남매에게 남기신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라.” 어머님의 큰 사랑을 제가 대신할 수는 없으나, 맏아들로서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동생들과 조카들을 위해 기도하며, 갈등 앞에서는 제가 먼저 낮아지고, 기쁨 앞에서는 함께 감사하며, 어려움 앞에서는 서로의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이 약속을 어머니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새깁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어머니가 심으신 믿음과 사랑, 배움과 섬김의 씨앗을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새벽을 더 깨우고, 교회를 더 섬기며, 이웃의 상처에 더 가까이 서겠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병도, 눈물도, 빚도 없는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고, 어머니의 미소는 우리의 보람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평생 어머니와 저희 네 남매를 위해 후원하고 기도해 주시고, 병환 중에는 가족보다 더한 사랑으로 살펴 주신 모교회 광주제일성결교회 강민호 목사님과 여러 성도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투병과정에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 사랑으로 섬겨주신 사랑샘병원(원장 서강석)과 전남제일요양병원(대표원장 지승규)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장례를 품격있게 치루도록 협력해 주신 VIP장례타운(회장 고병희)께도 감사드립니다. 부고 소식을 들으시고 장례식장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오신 조문객들, 형편상 마음을 담아 부의를 보내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큰 빚을 졌습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믿음과 사랑의 길을 계속 걸으며,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넉넉히 품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가정의 경조사에도 저희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소식을 전해 주시면, 기도와 섬김으로 응답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다시 뵐 그 날을 소망합니다.
2026년 2월 7일
큰아들 이박행 드림
어머니의 품은 태중에서부터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저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찬양과 기도로 태교를 받았습니다. 다섯 살 무렵엔 어머니 손을 잡고 월야종합고등학교로 가, 교탁 아래 쪼그리고 앉아 고등학생들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머니는 배움의 자리에 저를 먼저 앉히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지혜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생은 배움과 가르침으로 빛났습니다. 젊은 시절 신학문을 익히시고 평생 후학 양성에 힘쓰셨습니다. 강단에서와 일상에서 “배움은 사람을 살린다”는 신념으로 사람을 세우셨고, 그 가르침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저희 네 남매를 잉태하시고 낳으셔서, 산고를 찬양으로, 눈물을 양식으로 바꾸어 우리를 길러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정에는 이사와 고단함이 잦았습니다. 아버지 사업의 부침으로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싣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고, 여섯 식구가 한 칸 방에서 칼잠을 자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오랜 세월 ‘문칸 방’에서 지내시다가, 어느 날 이모님의 도움으로 지금의 2층 집에 어머니만의 방을 얻으셨을 때, 어머니는 그곳을 마음속 ‘궁궐’처럼 여기며 사셨습니다. 계단이 가팔라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로 옮기시자 여러 번 권했지만, 어머니는 “교회 가까이 살며 새벽예배 드리고 싶다”고 하시며 여생을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교회를 향한 사모함이 마지막까지 어머니의 방향이었습니다.
저는 열네 살에 사구체신염으로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셨고,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돌려 밤새 철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그때의 증인들이 계십니다. 치유 집회를 찾아다니며, 엘리사를 섬긴 수넴 여인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제게도 생명이 돌아오기를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그 믿음의 눈물은 저를 살렸고, 우리 가정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적이었고,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손에 굳은살이 배도록 수고하시며 “배움만은 끊지 말아라” 하시던 그 한마디가 우리를 책상 앞과 기도의 자리로 다시 세웠습니다. 네 남매의 학업과 사명은 모두 어머니의 희생에서 나온 열매입니다.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은 신앙과 근면, 성실과 인내를 본받아, 어머니의 신앙과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정진하겠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사랑은 생명의 계보로 이어졌습니다. 저희 네 남매가 장성하여 각자 가정을 이루어 어느새 여덟 식구가 되었고, 네 가정에 손자손녀 아홉을 허락받아 모두 열일곱 식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의 결실이며, 어머니께서 이 땅에서 맡기신 사명을 성실히 완수하셨음을 증언합니다.
그 사명의 열매는 사역의 자리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저와 안해 최금옥은 전인치유와 기독문화선교, 기독언론 사역의 현장에서 작은 등불이 되고자 했습니다. 둘째 이지연 사모는 남편 김광삼 목사와 함께 개척교회 사역을 감당해 왔고, 셋째 이태행 목사는 안해 손덕신 사모와 더불어 장애우 사역의 곁자리가 되었습니다. 넷째 이남행 목사는 안해 오혜림 사모와 함께 위구르 민족과 국내 이주민을 섬기는 선교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홉 명의 손자손녀들 또한 각자의 은사를 따라 자기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 기증을 약속하셨습니다.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공부할 의학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사랑을 남기고 떠나신 것입니다. 몸소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신 어머니께서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신 것입니다. 저희 자녀들은 가족회의를 통해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기로 하고, 장례식 둘째 날 어머니를 전남대학교로 떠나보냈습니다. 입관실에서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하였고, 머리카락은 정갈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열일곱 명의 가족이 작별 인사를 올리며 오열했습니다.
“어머니, 저희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 품에 안겨 안식하세요. 사랑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가르침(요 12:24)을 어머니는 삶으로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는 평생의 스승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네 남매에게 남기신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라.” 어머님의 큰 사랑을 제가 대신할 수는 없으나, 맏아들로서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동생들과 조카들을 위해 기도하며, 갈등 앞에서는 제가 먼저 낮아지고, 기쁨 앞에서는 함께 감사하며, 어려움 앞에서는 서로의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이 약속을 어머니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새깁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어머니가 심으신 믿음과 사랑, 배움과 섬김의 씨앗을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새벽을 더 깨우고, 교회를 더 섬기며, 이웃의 상처에 더 가까이 서겠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병도, 눈물도, 빚도 없는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고, 어머니의 미소는 우리의 보람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평생 어머니와 저희 네 남매를 위해 후원하고 기도해 주시고, 병환 중에는 가족보다 더한 사랑으로 살펴 주신 모교회 광주제일성결교회 강민호 목사님과 여러 성도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투병과정에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 사랑으로 섬겨주신 사랑샘병원(원장 서강석)과 전남제일요양병원(대표원장 지승규)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장례를 품격있게 치루도록 협력해 주신 VIP장례타운(회장 고병희)께도 감사드립니다. 부고 소식을 들으시고 장례식장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오신 조문객들, 형편상 마음을 담아 부의를 보내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큰 빚을 졌습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믿음과 사랑의 길을 계속 걸으며,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넉넉히 품겠습니다. 또한 여러분 가정의 경조사에도 저희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소식을 전해 주시면, 기도와 섬김으로 응답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다시 뵐 그 날을 소망합니다.
2026년 2월 7일
큰아들 이박행 드림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08(목) 1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