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나름 명망 있고 유명한 목사님들을 존경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존경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인격적일 뿐만 아니라 말씀 강해도 잘하고 교회도 잘 성장시키는 분들을 제 멘토로 여겼고, 당연한 결과물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의 특징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삶을 바꾸는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분들을 따르고 존경하는 후배들이 많았고, 실제로 많이 찾아가 배움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글과 말은 힘이 있었고 영향력도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존경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올해로 목사가 된지 23년, 담임목회는 11년차가 되었습니다. 3년 동안 담임목회 준비를 했고, 그동안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많은 변화를 추구했으며, 함부로 주장하지 않고 최대한 겸손하게 목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을 돌아보니 저의 모습에서 묘한 교만함이 넘쳐났고, 겸손하기보다 논쟁으로 누군가를 이기려는 태도로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지나친 겸손이 아닙니다. 제 안에 내재되어 있던 본성입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정의로운 척, 마음 넓은 척 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트렌드를 읽고, 미래를 준비하고, 변화를 수용하고, 후배에게 과감히 양보하고 이제 후학을 위해 애써야겠다고 공언하였지만, 여전히 유명세에 목마르고 남의 인정을 갈구하며 트렌디한 목사가 되길 바랬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허름한 예배당을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낡았고, 아주 고전적인 성경 문구와 플래카드 그리고 오래된 회중석 의자와 강대상이 놓여있었습니다. 회중석에서 간단하게 기도를 드린 후에 강단에 올라가보았습니다. 강단 뒤엔 1인용 전기장판과 방석, 헤진 성경책 한권과 성도들의 기도내용이 빽빽하게 적힌 노트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방석은 너덜거렸고, 기도상은 삐걱거렸습니다. 잠시 앉아 기도노트를 살폈습니다. 눈물자국이 보였습니다. 부모들의 기도는 온통 자식들을 위한 내용이었습니다. 기복적으로 보이기보다 부모들의 진심이 드러나는 기도내용이었습니다. 저절로 숙연해지며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문 여는 소리에 얼른 자리에 일어나 들어오시는 목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좋으신 목사님입니다.
한때 저는 이분을 무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에 여전히 숫자의 변화가 없는 성도들, 카리스마 없는 설교, 성경 해석도 그리 탁월하지 않는 본문 이해, 책을 읽기보다는 여기저기 남들 돕기에 바쁜 인생을 살아가는 목사님을 존경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되지 말아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트렌드를 따라가지만 교회는 본질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저는 본질을 따르는 것에 천착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잘 포장할 수 있을 지, 유혹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집착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입니다. 시대에 맞게 트렌디한 맞춤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트렌디하게 전해지지 못해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전해진 만큼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능력이 드러나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허름하고 냄새나는 집이어도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복음의 진가는 규모나 외형이 아니라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힘들고 지난한 현장을 올곧이 지키고 있는 그분들이 미련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포기할 수 없는 한 영혼을 위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런 분들이 한국기독교를 지키고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는 분들이심을 다시 느낍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의 제자로서 평생 목회의 길을 걷기로 한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5년 전 방문했던 그곳을 다시 찾고 싶지만 이제 그분마저 떠난 자리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자리가 그런 곳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