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그날이 우리 집 모내기를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일을 할 수 없기에 일하는 사람들 밥 짓는 역할을 맡으신 것이다.
내 얼굴을 보신 아버지께서 깜짝 놀라셨다.
“너 얼굴이 그게 뭐냐? 누가 때렸냐?”
얼굴에 박혀있는 주산 알 두 개를 뽑아내면서 순간 아버지는 경련을 일으킨 듯 바르르 떨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두들겨 맞은 사건을 울면서 말했다.
“그 나쁜 놈.”
아버지는 양손에 힘을 주면서 목발을 짚고 벌떡 일어나셨다.
그길로 선생님을 찾아 학교로 가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속으로 ‘이제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한테 혼났다’고 생각했다.
밤 11시가 되도록 아버지가 오시지 않았다. 불같이 일어나 선생님을 쫓아간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집에 오시지 않은 것이다.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모두 마당에 나와 기다렸다. 아버지가 오시는 건너편 고갯길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등불 하나가 보였다.
“아버지다!”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등불 내려오는 속도가 엄청 빨랐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시니까 그런 속도로는 내려올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등불이 우리 집으로 왔다.
집에 들어오는 어떤 남자분이 엄마를 불렀다.
“숙모, 주정이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어이 조카, 그게 무슨 말이당가.”
“아, 주정이 아부지가 돌아가셨단 말이요.”
우리 가족은 한걸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학교 앞 점방(가게)로 갔다.
아버지는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을 만나지 않고, 점방 주인에게 담임선생을 모셔 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탁을 전하려고 가게주인은 바로 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기다리는 그 순간에도 분을 참지 못하셨다.
혈압이 올라 심장마비로 운명하셨다. 선생님을 만나지도 못하셨다.
아버지는 학교 앞 점방에서 이렇게 돌아가셨다.
다음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주정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너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라.”
그날이 6.25 날이라 담임선생님께서는 교단 위에서 6.25노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
수업 시간에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죽었다는 생각이 더더 슬프게 했다.
3일째 되는 날, 운동장 옆길에 아버지 상여가 나타났다. 묘지로 향한 운구였다. 동네 청년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학교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욕을 퍼붓고 수없이 많은 돌멩이가 학교로 날라 왔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울분과 항의 표시였다.
그때 교감선생님이 오셔서 “주정아, 아버님 상여가 나가니까 저 상여 뒤에 서서 따라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우리 가족은 흩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청천벽력이었다. 온 가족 8남매는 길고 깊게 슬퍼할 시간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형들은 객지로 나가 샘 파는 일을 하는 등 노동판으로 떠돌았다. 누나들도 객지 사방으로 나가서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걷게 되었다. 이처럼 아버지의 운명으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나는 아버지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으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그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바로 다음 날 큰누나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전학 갔다.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때이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