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한 목회자 독서모임에서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저, 나무옆의자 출판)’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으로 노숙자인 ‘독고’씨가 나옵니다. 책에서는 마지막에 반전이 있지만 ‘독고’라는 이름이 주인공의 원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사연이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10년 전에 만났던 ‘점쇠’씨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이 이름이 그냥 지어낸 이름인 줄 알았는데 실명이었습니다.
그를 처음 본 건 2012년도였습니다. 가끔 술 취한 모습으로 일요일에 예배당을 찾았고, 그런 그를 저와 성도는 그리 반기지 않았습니다. 가급적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지만 그는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쯤 예배당을 찾아왔습니다. 여느 노숙자처럼 술을 사기 위한 돈을 빌러 왔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땐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그를 밖으로 여러 번 잡아끌기도 했고, 가끔은 돈 몇 푼 쥐어주기도 했는데, 그는 돈이 생기는 즉시 바로 소주를 사서 먹었습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던 거지요.
그러던 그가 2013년도부터는 주일이 아닌 평일에 예배당을 찾아왔습니다. 그해는 제가 담임목회를 처음 시작하는 해였는데, 저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제 노숙자들이 찾아와도 화를 내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해야겠노라 다짐했고, 그 첫 대상이 점쇠 씨였습니다.
주일에 찾아와 가끔 소란을 일으키던 점쇠 씨에게 평일에 찾아오면 잘 해주겠노라고 했는데, 그는 정말 평일에 찾아왔고, 저는 그를 사무실에 들인 후 따뜻한 믹스커피를 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묻지 않았던 그의 이름과 신상에 대해 간단하게 묻고 혹시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일렀습니다. 정말 진심이었고, 그간 그를 윽박질렀던 과거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원칙을 세웠습니다. ‘절대 현금은 주지 말자. 대신 근처 식당에 가서 맛있는 밥을 사주자. 술이 아닌 밥으로 배를 채우게 하자. 그리고 가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였습니다. 진심으로 대하자 그는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알콜중독자였던 그를 설득해 병원진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는 간경화와 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입원했습니다. 복수를 빼고 치료를 받으면서 알콜중독치료센터에도 입소하기로 했고 치료비용은 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쇠 씨의 누나와 매형에게 연락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치료 후에 살아갈 방법을 같이 강구해 보자고 의논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점쇠 씨가 다시 건강했던 과거 일상으로 돌아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 다시 만난 그의 모습은 저를 낙망케했습니다. 점쇠 씨를 다시 본 건 2013년 12월 초였습니다. 추운 겨울 손을 비비며 3층 소예배실 옆 담임목사실에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제 코를 찔렀고, 썩은 냄새와 술냄새가 소예배실에 가득했습니다. 단상 위에 한 물체가 어둠 가운데 미동도 없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석 달 만에 보는 점쇠 씨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소예배실의 불을 켜고 점쇠씨 몸의 이곳저곳을 눈으로 얼른 살폈습니다. 병원에서 어느 정도 치료를 잘 받은 듯 복수도 차지 않고 사지는 멀쩡해 보였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갑자가 화가 났습니다. 몸이 좀 좋아지니 다시 술을 먹고 이곳으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잠든 점쇠 씨를 깨웠더니 짜증을 내며 일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우악스럽게 그를 일으켜 세워 나가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어떻게 술을 먹고 이곳에 올 수 있냐고, 나를 무시하는 거냐고, 술 먹고 올 거면 찾아오지 말라고 모질게 말했습니다. 저를 알아본 그는 애처롭게 배고프니 밥을 사달라고 했으나 난 술을 안먹고 오면 밥이 아니라 고기도 사주겠지만 술을 먹고 왔으니 나가라며 내쫓았습니다. 그는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나갔습니다.
그가 떠난 뒤에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인 채 사무실에 앉아 저는 제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가 올 때 술 먹지 않고 오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술을 끊지 못할 그가 오지 않기를 바랐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그가 다시 저를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를 쫓아내고 몇 달이 지난 후 갑자기 그의 안부가 궁금해진 저는 그의 매형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추운 겨울 노숙하다 응급실에 실려간 후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저를 만난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술 먹고 학교 앞 정자에서 잠을 자다가 변고를 당했습니다. 그의 매형은 장례도 잘 치렀고 그동안 처남에게 인간적으로 잘 대해줘서 고맙다고 저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갑자가 전화 너머로 들리는 고맙다는 말이 허공을 가르고 부유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동굴로 들어가 진지하게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난 정말 목사가 맞는가? 난 목사로서의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난 그리스도인인가? 질문을 안고 깊은 동굴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가 보고 싶었습니다. 만나서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그를 만났을 때 더 따뜻하게 말하고 안아줄 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의 이웃이었을까요?(눅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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