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과 사울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6년 10월 21일(수) 1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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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사람의 품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봅니다. 특히 성경에 언급된 이름들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대략 성품이나 운명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요즘에도 참 중요합니다. 좋은 이름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리 보면 사울이라는 이름은 참 좋은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 명 등장하고, 신약성경에서도 사울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활동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구약과 신약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두 사람을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사울은 역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고, 신약의 대표는 후일에 이름을 바울로 바꾼 사울입니다.
이 둘을 비교해 볼 때 그들은 퍽 대조되는 삶을 살다간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사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친 삶을 살았고, 신약의 사울은 육체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삶을 마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과도기에 초대 왕이 된 사울은 무척이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권력은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를 타락시키는 흉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왕이면서도 일생동안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다윗만 잡으러 다니다가 기구한 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처음의 은혜를 망각한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인간적인 욕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결국 영적인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권력이나 재물은 그것을 다스릴 만한 사람에게 있어야 바르게 사용될 수 있지, 그것들의 노예가 될 만한 인격의 소유자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흉기로 변하게 됩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의 사울은 사울왕과 정반대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교만하기도 하고 엘리트 의식을 가졌던 혈기 방자한 청년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만 해도 사울은 살기가 등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로 회심하여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전심으로 주만 위해 성령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지식과 지위를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을 자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으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바울의 뜻은 “작은 자”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 뒤 자신을 높였던 데 반해 바울은 자신을 낮추는 데 힘을 썼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후 20년이 경과한 후에 쓴 고린도전서에서는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소개하더니, 3년 후에 쓴 에베소서에서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쓴 디모데전서에서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겸손해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삶에서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존 웨슬리는 말하기를 모든 덕의 기초는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제자가 세상의 제일 좋은 덕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그것은 “겸손”이라 하였습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둘째도 겸손이다.” 그러면 셋째는 무엇입니까 하니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겸손”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존귀하게도 하고 패망하게도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솔로몬도 하나님께 지혜 대신 겸손을 구했다면 아마 이스라엘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겸손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그것은 인간의 깊이 타락된 본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십자가 앞에 엎드렸던 바울의 영성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겸손의 모습일 것입니다. 두 사울의 엇갈린 발자취를 돌아보며, 날마다 타락된 본성을 죽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존귀한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이 둘을 비교해 볼 때 그들은 퍽 대조되는 삶을 살다간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사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친 삶을 살았고, 신약의 사울은 육체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삶을 마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과도기에 초대 왕이 된 사울은 무척이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권력은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를 타락시키는 흉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왕이면서도 일생동안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다윗만 잡으러 다니다가 기구한 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처음의 은혜를 망각한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인간적인 욕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결국 영적인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권력이나 재물은 그것을 다스릴 만한 사람에게 있어야 바르게 사용될 수 있지, 그것들의 노예가 될 만한 인격의 소유자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흉기로 변하게 됩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의 사울은 사울왕과 정반대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교만하기도 하고 엘리트 의식을 가졌던 혈기 방자한 청년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만 해도 사울은 살기가 등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로 회심하여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전심으로 주만 위해 성령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지식과 지위를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을 자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으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바울의 뜻은 “작은 자”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 뒤 자신을 높였던 데 반해 바울은 자신을 낮추는 데 힘을 썼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후 20년이 경과한 후에 쓴 고린도전서에서는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소개하더니, 3년 후에 쓴 에베소서에서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쓴 디모데전서에서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겸손해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삶에서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존 웨슬리는 말하기를 모든 덕의 기초는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제자가 세상의 제일 좋은 덕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그것은 “겸손”이라 하였습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둘째도 겸손이다.” 그러면 셋째는 무엇입니까 하니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겸손”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존귀하게도 하고 패망하게도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솔로몬도 하나님께 지혜 대신 겸손을 구했다면 아마 이스라엘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겸손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그것은 인간의 깊이 타락된 본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십자가 앞에 엎드렸던 바울의 영성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겸손의 모습일 것입니다. 두 사울의 엇갈린 발자취를 돌아보며, 날마다 타락된 본성을 죽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존귀한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1(수) 16:10















